영원한 자유를 위해 떠나다.


내가 대학교 1학년 입학할 때는, 학부체제로 전환한 2년차로 어수선했다.

당시 350명에 달하는 신입생은, 학교에서 임의로 정한 20개의 조로 나뉘어 졌으며, 

그 조도 1,2조, 3,4조 식으로 두 조씩 한 그룹으로 묶였다.

그러나 수강신청이 거의 조별로 진행 되었기에 같은 그룹의 두 조가 마주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아래 김군은 3조, 나는 4조였고, 만남은 있었지만 교류는 없었다.


2학년을 마치고 군에 다녀와서 복학한 3학년.

3조원 이었던 K군은 내 고등학교 동창으로 절친이였다. 

이 K의 소개로 나는 3학년 때 김군을 정식으로 알게 되었다.


1학년 때 먼 발치로 본 김군의 첫인상은 까칠하고 좀 날라리 느낌이 나는 친구였다. 

3학년 때 소개를 받고도 그런 첫 인상이 남아 있었는데, 지내다 보니 그건 아니었다.

 굉장히 솔직하고, 자신만만 했으며, 주관이 뚜렷하고, 자상한 녀석이었다.


어찌된 일인지 나는 K 보다 김군하고 수업을 거의 같이 들었다. 

그래서 함께하는 시간이 많긴 하였지만 그래도 김군하고 나는 정말 잘 통했다. 

나로 말하것 같으면 친화력도 없고 자괴감에 빠져있는 음울한 청년이었는데 

이 녀석하고는 꽤나 잘 통했다. 정치, 문화, 종교 등등 대부분 의기투합 하였으며, 

특히 술집에서 "참이슬 오리지널"을 골라서 시키는 사람은 나와 이녀석 밖에 없었다.


졸업 후 나와 K는 그래도 무난히 취업에 성공을 했는데 김군은 좀 여의치가 않았다. 

회사생활도 고약한 상사들을 만나 원활하지 못하여 그는 회사를 그만두고, 

준비기간을 거쳐 일본으로 취업하여 건너가 버렸다. 

일본 가기 며칠 전 난 이녀석과 둘이서 홍대에서 술을 마셨다. 

서운한 마음이었을까. 술을 마셔서 필름 끊긴 적이 없었는데, 

이 날은 이 녀석과 헤어지고 혼자 2호선을 타고 1바퀴 반을 돌았다.


그 이후 김군은 일년에 한두번은 한국에 왔던 것 같으나, 

실제 나와 만난 것은 한 2년에 한번 정도 였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1년 전. 김군이 멀리 일본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에는 당연히 믿지를 못했다. 항상 당당하고 밝은 친구였으니까. 

본인 의지로 상에는 친구들을 부르지 말라는 말을 남겨, 나는 상이 끝난 시점에 연락을 받았다.

 결국 나는 차가운 땅 속에 있는 친구 앞에 설 수 밖에 없었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고, 욕지기가 나왔다.


듣자하니 김군은 작년 1월에 한국에 들어왔었다고 한다. 

그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 때 내가 만났으면 어땠을까. 

왜 연락을 자주 하지 않았을까. 죄책감도 들었고 배신감도 들었다. 

나는 이녀석에게 이 정도밖에 되지 않았던가.

어쨌든 그건 현실이었고, 나는 절친 한명을 잃었다....


이 녀석이 자유를 찾아 떠난 지 1년 정도가 지났다. 

오늘은 대학친구 네명이서 이 녀석을 찾았다. 

날씨가 꽤 추워 영하 4도의 날씨였는데, 우리는 이녀석 앞에 앉아 한시간 반을 수다를 떨었다. 

이 녀석, 오랫만에 친구들 이야기 들으니 많이 반가웠을게다. 

나는 많이 부족했지만, 나를 빼면 너는 정말 좋은 친구들을 뒀다.


잘 지내라. 담에 또 찾아가마.

거기서는 이런저런 고민하지 말고 자유롭게 지내라.

by 서른즈음에 | 2015/01/31 23:07 | ◆ My Precious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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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서른즈음에 at 2018/12/09 21:59
보고싶다.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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